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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아우어바흐 Auerbach, Frank 작품

아트 컬렉션

by 픽픽 2015. 8. 19.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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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아우어바흐

Auerbach, Frank


세상에 대해 친밀한 시선을 담고 있는 프랑크 아우어바흐의 회화 작품은 전후 영국 미술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에 속한다. 베를린에서 유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우어바흐는 1939년에 나치를 피해 영국으로 보내졌다. 그 후 그는 부모를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런던에서 아우어바흐는 세인트마틴스 미술학교와 왕립미술 칼리지를 다녔다. 그 후 버러 폴리테크닉에서 소용돌이파(Vorticism)의 화가 데이비드 봄버그 밑에서 공부를 했다. 이때 받은 봄버그의 영향과 친구였던 미래 표현주의 화가 리온 코소프로부터 받은 영향이 그의 작품 세계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1956년에 첫 개인전을 열었는데, 물감을 두껍게 바르는 그의 임파스토 기법은 호평과 악평을 동시에 받았다. 어떤 비평가들은 그의 그림이 조각 같아 보인다고 혹평했다.


아우어바흐의 독특한 작업 공간과 작업 습관은 몇 년에 걸쳐 거의 신화화되었다. 1954년부터 그는 런던의 캠던에 있는 빅토리언의 작업실을 사용했다. 그는 일 년 365일 가운데 364일을 작업을 했다고 전한다. 이처럼 그림을 그리는 데 몰두했던 아우어바흐에게 빅토리언의 작업실은 안식처이기도 했다. 또 그는 제한된 수의 모델만을 그렸고, 작업실 주변의 도시 풍경들을 그렸다. 열정적으로 작업에 매진했지만 일 년에 열둘에서 열다섯 정도밖에는 완성하지 못했다. 물감을 여러 겹 바르는 것이 그의 작품의 트레이드마크인데, 가끔은 손가락을 이용해 칠하기도 했다. 


이는 종종 작품을 부수고 처음부터 다시 그리는 그의 작업 스타일과 모순되어 보이는 듯도 하다. 심사숙고해 그리고 지우고 하는 작업 과정 자체가 그에게는 아드레날린 역할을 했다. 강박적으로 특정 주제의 그림을 그렸던 그는 1990년에 그 주제가 아니라면 그림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것은 단순히 제스처에 불과하다. 하고자 하는 동기가 있는 것만이 그림의 주제가 될 수 있다."


"나는 나의 현재 생활, 그리고 그것에 대한 나의 느낌, 또 왕성한 활동력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프랑크 아우어바흐 Auerbach, Frank


프랑크 아우어바흐 Auerbach, Fr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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